기관 없는 신체를 위한 극장 연구

– <기관 없는 신체를 위한 극장 연구> 윤정원은 <매체를 통과하는 신체 연구>(서울문화재단 2021), <비인간 동물과 인간의 접점 리서치>(아티언스대전 2021-22)를 포함한 다분야 리서치를 통해 지난 4년간 비인간 신체를 다루는 기계를 만들고, 공연/ 작품을 만들어왔다. 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고도화된 매체 안으로 신체가 편입되는 순간, 매체는 욕망들이 움직이는 변질-머신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 변질-머신의 가장 강력한 힘은, 미디어가 충분히…

<기관 없는 신체를 위한 극장 연구>

윤정원은 <매체를 통과하는 신체 연구>(서울문화재단 2021), <비인간 동물과 인간의 접점 리서치>(아티언스대전 2021-22)를 포함한 다분야 리서치를 통해 지난 4년간 비인간 신체를 다루는 기계를 만들고, 공연/ 작품을 만들어왔다. 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고도화된 매체 안으로 신체가 편입되는 순간, 매체는 욕망들이 움직이는 변질-머신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 변질-머신의 가장 강력한 힘은, 미디어가 충분히 고도화되고 나면, 그것이 비추고 있던 실제 생명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도 알 수 없고 상관도 없게 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충분히 실험하고 훈련된 미디어의 렌더링 대상은 비인간 동물, 사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윤정원 23년 프로젝트의 ‘기관 없는 신체’는 들뢰즈 철학의 주요 개념이자, 프랑스 시인 앙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가 창안한 용어다. 세계를 운동성-기계의 이중성을 지닌 무수한 욕망이 배치-재배치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장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이번 작업의 프로젝트명으로 인용했다. 가공 컨테이너 04 시리즈로 넘버링하는 이번 <기관 없는 신체들을 위한 극장 연구>는 윤정원이 그간 리서치하고 기획한 기계장치들을 하나의 무대 안에 연결시키고, 초-연결적 무대 장치 안에서 비인간과 인간, 사물들이 혼재하는 *마당극(*극이 현장 그리고 관객과 경계 없이 연결된다는 측면에서)과 같은 현장을 구현하는 방법을 연구, 실험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계장치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양방향의 조작 힘‘을 재현한다. ’되기‘와 ’인간화‘가 그것이다. 한쪽에서는 예술가들의 ‘비인간-되기’실험들이 계속되지만, 그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래왔듯 모든 비인간 존재들을 ‘인간화’하여 끌어오고 있으며, 점차 그 복잡성이 증가하고 기술이 고도화되어 인과를 알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인간-되기/ 폭력적 인간화, 이미지의 생산> 와 <비인간-‘되기‘/ 실현과 한계점이 존재하는>의 실천들로 만들어진 여럿의 신체들을 하나의 시스템 무대 위에서 다루고 이전의 작업과 다르게 그 데이터가 처리되는 중간지대를 중점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 드러냄을 공연형태로 변환하고자 하는 기획이 <기관 없는 신체들을 위한 극장>이다. 기관 없는 신체들을 모으는 일은, 그 신체 하나하나의 주체로서의 중요성과 그 모든 신체들을 한군데 모이게끔 하는 매체 탄생의 리스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 줄다리기의 현장과 긴장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그 줄다리기가 일어나고 있는, 또 일어나야만 하는 시스템 자체가 동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되기’와 ‘포스트 휴먼’ 이라 쓰고, 서구적 인간화를 답습-반복하는 예술이 아니라, 현 시스템을 반영한 무대를 만들고, 기술집약적이고 과학적인 무대 안에서 비인간과 인간의 최선의 중간지대, 관객에 가 닿을 인식의 중간지대를 형성해보려는 시도이다. 기술만능주의적, 낭만적 ‘되기’, ‘기술을 비판하지 않는 융합‘을 넘어 중간지대가 필요함을, 이미 존재함을 인정하고 새로 구성해보려는 본 기획은 포스트휴먼 담론 안에서도 타협안이 아닌, 더 진보한 시도로 이해될 것이다.

철학적 배경

윤정원은, 생물학을 공부했던 이력과 관심을 살려 2019년부터 생물종-매체 관계에 대해 리서치했고, 20년 부터는 매해 <가공 컨테이너 시리즈>라고 이름 붙인 다양한 매체-기계를 만들었다. 윤정원의 세계관 안에서 신체를 통과시키는 이 가공 컨테이너들은 수학의 함수상자- 수수께끼 상자처럼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가든 인간의 신체로 만들어버리거나, 유기체가 아닌 것을 유기체로 만들어 버리거나,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시키곤 하는 매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설치물이었다. 이후 무용 기술 리서치(국립현대무용단 무용x기술 창작랩),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의 협업(아티언스 대전)으로 진행한 생물학적 리서치를 거치면서 이 수수께끼 상자가 한방향으로만 작동하지도, 같은 함수식으로만 작동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서로가 서로와 결합 되면서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탐구의 과정에서 미쉘 푸코의 ’계보학‘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천개의 고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리좀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모상이 아닌 지도(carte)다. 모상이 아니라 지도를 만드는 것. …(중략) 지도는 스스로에 갇혀있는 무의식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한다(construit). 지도는 열려있으며, 모든 차원들과 접속될 수 있으며, 분해할 수 있고, 거꾸로 뒤집을 수 있으며, 끊임없는 변용의 수용에 민감할 수 있다. 그것은 찢어질 수 있으며, 전복될 수 있고, 모든 자연의 몽타쥬에 적응할 수 있으며, 개인이나 집단, 사회 형성체에 의해 작동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벽에다 그릴 수 있고, 예술작품으로 간주할 수도 있으며, 정치적인 활동이나 [철학적] 성찰로 구성할(construire) 수도 있다. 언제나 다수의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리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일 것이다. 테리어는 이러한 의미에서 동물적 리좀이며, 치환의 통로로서 탈주선과 보존이나 주거의 지층들(cf.사향쥐) 사이의 분명한 구별을 담고 있다. 모상이 언제나 ‘같은 것으로’ 다시 돌아오는 반면, 지도는 다수의 입구를 갖는다.  

(천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_ 들뢰즈, 가타리)

지금껏 공부하고 리서치하며 이름 붙인 이 세상의 <가공 컨테이너 (Fabricated Containers>적인 부분의 매커니즘, 성질과 유사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통찰이 더 구체화 되고 작품관을 지지받는 경험을 했다. 특히 들뢰즈는 ‘동물-되기’의 여러 사례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동시대 예술 작업들을 보며 ‘되기’ 실천의 시도와 그 한계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시기, 식별불가능성 지대로서의 기관없는 신체는 충분히 지향해볼 만한 실천이자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개발한 기술들을 동원해 식별불가능성의 지대를 구축하고 기관없는 신체를 삽입하는 여러 방향으로 입구가 열린 극장을 만들자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다수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데이터가 흐르는, 계속해서 상태를 변화시키고, 아예 다른 것이 되기도 하는 그런 무용 도구이자 이동식 극장 기계를 설계했다.

과정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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